[나주=조영준, 윤성민 기자]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생활 필수품일까, 아니면 사람의 마음과 삶까지 변화시키는 또 하나의 언어일까.
최근 패션 산업은 기능성과 디자인을 넘어 "웰니스(Wellness)"와 "치유(Healing)"라는 새로운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패션을 통해 심리적 안정과 삶의 질 향상을 모색하는 "패션 치유(Fashion Therapy)"는 학계와 산업계에서 새로운 연구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김 교수는 전남대학교 의류학과에서 피복 환경학을 연구하며 의복의 색채와 소재, 착용감, 의복 압, 체온 조절, 뇌파와 혈류 변화 등 의복이 인체와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연구해 온 전문가이다.
일본 문화여자대학에서 피복 환경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20여 년간 의류 소재와 피복 환경학, 친환경 섬유, 한지 섬유, 천연 염색 등을 연구하며 "사람 중심의 의생활"을 꾸준히 탐구해 왔다.
최근에는 본지를 통해 "패션 치유" 연재 칼럼을 선보이며 패션을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몸과 마음을 돌보는 생활 문화로 재조명하고 있다. 그는 "좋은 패션은 아름다움을 넘어 사람이 자신답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라는 철학 아래 패션의 사회적 역할과 치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대담에서는 패션 치유의 개념과 의학적·과학적 근거, 천연 염색과 패션 치유의 연관성, 우울과 스트레스 시대에서 패션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물론, 국내 패션 기업들이 새로운 브랜드 전략으로 패션 치유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나눴다.
패션 산업이 "무엇을 입을 것인가"를 넘어 "왜 입는가", 그리고 "어떻게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 이번 특집 대담이 패션 산업의 새로운 방향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패션 치유 분야 대표 연구자인 김성희 전남대 의류학과 교수
■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수님은 최근 패션 저널-텍스타일 라이프 매체를 통해 패션 치유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패션 치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 "패션 치유(Fashion Therapy)"는 말 그대로 패션을 매개로 몸과 마음의 회복을 돕는 접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 고립감에 쉽게 지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 치유나 자연 치유, 예술 치유처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회복의 방식이 중요해졌고, 그 가운데 패션을 활용하는 것이 패션 치유입니다.
패션 치유에서는 옷과 패션 소품의 색채, 소재, 형태, 착용감, 체온 조절, 몸의 움직임 같은 요소가 사람의 감정과 인지,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봅니다.
예를 들어 부드럽고 통기성이 좋은 옷은 몸의 긴장과 불편을 줄일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나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은 기분을 환기하고 자신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특정한 색이나 옷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효과를 준다고 단정하기보다, 개인의 취향과 경험, 현재의 신체 상태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패션 치유에서 중요한 것은 옷을 입는 결과만이 아니라 선택하고, 입고, 느끼는 과정입니다. 오늘의 기분을 살펴 색을 고르고, 몸이 편안한 소재를 선택하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과정 자체가 자기 돌봄이 될 수 있습니다.
천연 염색을 직접 체험하는 활동처럼 시각과 촉각, 후각을 함께 사용하는 경험도 다감각적인 치유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병원이나 요양 시설에서 환자의 편안함과 존엄성을 고려한 의복을 제공하는 것 역시 패션 치유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패션 치유와 ‘치유 패션’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용어가 비슷해 보이지만 출발점이 다릅니다. 패션 치유는 치유가 목적이고 패션은 그 수단입니다. 다시 말해 "이 옷을 입는 경험이 사람에게 어떤 심리적·신체적 변화를 줄 수 있는가"를 묻는 인간 중심의 접근입니다.
반면 치유 패션은 패션이 중심이고 치유적 기능이 하나의 속성으로 더해진 경우입니다. 항균·소취·온열·냉감 기능이 있는 소재, 아로마나 피톤치드 성분을 활용한 섬유, 요가복과 명상복, 수면웨어처럼 웰니스 생활과 연결된 제품들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패션 치유는 사람의 삶과 회복에 초점을 두고, 치유 패션은 의복의 기능과 상품성에 초점을 둡니다. 그러나 두 개념은 서로 대립하기보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치유적 기능을 갖춘 좋은 옷이 실제 생활 속에서 사람의 안정과 회복을 돕는다면, 치유 패션은 패션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칼럼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패션 치유는 거창한 변화가 아닙니다. 몸을 편안하게 하는 옷을 고르는 일, 좋아하는 색으로 기분을 환기하는 일,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으며 외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처럼 누구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자기 돌봄입니다.
패션이 단지 ‘얼마나 멋있는가’를 넘어, ‘사람이 자신을 얼마나 편안하게 느끼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도록 돕는가’를 함께 묻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패션 치유입니다.
■ 우리나라는 우울증 환자도 많고 자살 1위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패션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패션만으로 우울증을 치료하거나 자살을 예방할 수는 없습니다. 우울증은 전문적인 치료가 가능한 정신 건강 질환이며, 자살은 심리적 요인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 관계의 단절, 질병과 고립, 사회·문화적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공중 보건 문제입니다.
따라서 상담과 의료적 치료, 복지 지원, 가족과 지역 사회의 관심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패션은 그 과정에서 일상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보조적인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우울감이 깊어지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외출을 준비하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때 몸에 편안한 옷을 골라 입고, 잠옷에서 일상복으로 갈아입으며, 머리를 정돈하는 작은 행동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됩니다.
옷을 입는 행위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너진 생활의 리듬을 조금씩 되찾는 자기 돌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WHO도 우울증 관리에서 기존에 즐기던 활동을 이어 가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주변 사람과 연결되는 자기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패션은 자기 결정감을 회복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우울하거나 무기력할 때는 자신의 삶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하지만 오늘 어떤 색의 옷을 입을지, 몸을 조이지 않는 옷을 선택할지, 좋아하는 작은 포인트를 더할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소한 선택은 "아직 나에게 선택할 힘이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 줍니다.
패션은 사람과 다시 연결되는 통로도 될 수 있습니다. 옷을 갖춰 입고 집 밖으로 나가는 일,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하며 대화를 나누는 일은 고립된 사람을 관계 속으로 초대할 수 있습니다.
병원이나 요양 시설에서도 획일적인 환자복만 입히기보다 개인의 취향과 존엄성을 고려한 옷을 선택하도록 돕는다면, 환자가 자신을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가진 존재로 느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패션 치유의 역할을 과장해서도, 반대로 가볍게 보아서도 안 됩니다. 패션 치유는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대신하는 치료법이 아니라, 전문적인 치료와 사회적 지원 곁에서 사람이 자기 몸을 돌보고 일상의 감각을 회복하도록 돕는 생활 속 보조 수단입니다.
저는 패션이 우울증과 자살 문제를 단독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옷을 갈아입고, 몸에 편안한 색과 소재를 선택하고, 거울 속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계기로 패션 치유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셨는지요?
패션 치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제가 오랫동안 공부하고 가르쳐 온 전공의 방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대학 의류학과에서 의류 소재와 관련된 수업과 피복 환경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친환경 소재에도 관심이 많아 한지 섬유의 활용과 천연 염색을 중심으로 연구와 논문 발표를 이어 왔습니다. (투데이포커스 ⓒ www.todayf.kr